한나라 건국과정
단순한 항우, 이를 보며 답답해하는 범증, 위기의 유방, 홍문연(鴻門宴)
발달의 시작, 유방의 함곡관(函谷關) 봉쇄
회왕은 항우와 유방에게 병사를 나누어 서쪽의 진나라를 치도록 했는데 유방은 진나라의 심장부인 관중으로 바로 진격하게 하고, 항우는 북진하여 조나라 일대를 평정한 후 관중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지시했다. 그리고 이 두 명 중에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먼저 점령하는 사람에게 관중왕의 자리를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이건 항우에게 대단히 불리한 명령이었는데, 거리상으로만 봐도 항우의 경로는 유방에 비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훨씬 멀었고, 무엇보다도 진나라의 명장인 장한(章邯)이 이끄는 진나라 주력군이 조나라 일대에서 버티면서 다른 봉기군을 박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회왕이 이런 결정을 내린건 항우가 민간인 학살을 일삼았기 때문에 많은 제후들이나 백성들이 항우를 두려워만 할뿐 진심으로 따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진나라의 심장부인 관중 지방에는 보다 온화한 면모로 사람들의 인망을 얻고 있었던 유방을 보내는게 낫다고 평가한 것이다.
어쨌든 유방은 진군 도중 책사인 역이기 등을 얻었고 그들의 도움에 힘입어 차근차근 관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거점들을 돌파하거나 항복을 받아 항우보다 한발 앞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에 입성했다. 유방은 이른바 '약법삼장'을 발표하여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항복한 진왕 자영의 목숨을 부지해 주는 등 인기 정책을 펼쳤다.
이때 추씨 성을 가진 사람이 유방을 만나고는 제발 관중의 왕이 되어달라면서, 함곡관(函谷關)을 봉쇄해버리고 다른 제후들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 스스로도 관중왕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유방은 주변 모사들과 상의 한마디 나누지 않고 이 계책을 따른다. 다만 항우가 무섭긴 했는지 군사들을 함곡관으로 보내면서 그저 지키기만 하라고 애매하게 명령을 내렸다.
한편 항우는 회왕이 군통수권자로 임명한 상관 송의를 살해해 군의 지휘권을 탈취한 후 거록(鉅鹿)에서 장한의 진군을 박살내는 등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인 후에야 관중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 함곡관이 열리지 않는 것에 처음엔 진나라 군대가 버티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항우는 유방이 먼저 함양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자 격노하여 순식간에 함곡관을 돌파하고 함양 근교에 진을 친다.
이 때 유방의 좌사마인 조무상이라는 사람이 항우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유방이 관중왕이 되고 자영(진 마지막 왕)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보물을 모조리 독차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모함하면서 자기가 제후가 되려고 했다. 꿍꿍이는 뻔히 보였던 것 같지만 항우의 책사인 범증(范增)이 항우에게 '유방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 반드시 이번 기회에 없애야 한다'고 진언했고 항우도 유방을 죽일 기회만을 벼르고 있었다.
항우의 삼촌이 되는 항백(項伯)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 항백의 목숨을 구해줬음)과 친밀한 사이였다. 항우의 총공격 계획을 알고 장량에게 가서 그 계획을 알려주고 장량에게 몸을 피할 것을 권했다. 장량이 이 사실을 유방에게 알렸다. 평소 온후했던 장량조차 화가 나서 도대체 어떤 작자의 말을 듣고 함곡관을 막았느냐고 따지자 유방은 궁색해져서 자신에게 간언한 사람을 핑계대었지만, 그럼 그쪽 군사들이 항우네보다 나을 것 같았느냐고 꾸짖자 더는 변명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장량에게 빌다시피하며 조언을 구한다.
장량은 우선 항백을 소개시켜주고 용서를 청하게 했다. 유방은 "난 항우 장군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 사사로운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었소. 병사들로 함곡관 틀어막은 것도 도적들을 경계해서일 뿐이오. 저희가 뭘 잘못했습니까 제발 항장군께 잘 말씀해 주시오"라고 간청했다. 이 때 유방과 항백은 술잔도 나누고 혼담까지 나눴다고 한다. 그만큼 유방이 발등에 불 떨어진 나머지 항백에게 싹싹 빈 것. 항백은 잘 말하겠다고 하면서 다음 날에 유방에게 직접 항우의 진영까지 와서 사죄할 것을 권했고 유방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항백은 항우에게 돌아와서 유방의 말을 전하면서 유방이 관중에 들어와 진나라를 격파하고 진왕 자영을 사로잡은 공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도의에 맞지 않다고 진언하자 항우 역시 유방을 칠 계획을 거두어들였다. 항백이 유방 군영에 다녀온 것을 안 범증은 항우에게 내일 유방과 만나는 자리에서 유방의 목을 칠 것을 진언했는데, 자신이 옥결(玉玦. 일종의 패옥 같은 것)을 들면 유방을 죽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홍문연(鴻門宴) = 홍문의 회(鴻門之會)
이윽고 다음날 유방은 장량과 번쾌(樊噲) 이하 백여 기병만을 데리고 홍문의 항우 군영에 나타나 사죄를 했다. 유방은 이런 말로 자신을 변명했다. "저는 장군(항우)과 힘을 합쳐 진을 공격했습니다. 장군께서는 하북에서 싸우고 전 하남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저도 제가 먼저 함곡관에 들어와 진을 격파하고 여기서 장군과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소인배의 말 때문에 장군과 제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항우는 이 변명을 받아들였고 분위기는 일단 잘 풀리고 술자리가 열렸다.
항우(項羽)와 항백(項伯)은 동쪽을 보고 앉고 범증(范增)은 남쪽, 유방(劉邦)은 북쪽, 장량(張良)은 서쪽을 향해 앉았다. 연회가 한창 진행되고 항우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범증이 세 번이나 항우를 향해 옥결을 들어 유방을 죽이자는 신호를 했으나 항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획이 틀어질 것을 염려한 범증은 밖으로 나와 항우의 친척인 항장이라는 사람에게 "아무래도 직접 행동을 해야 할 듯. 그대가 들어가서 패공에게 술잔을 올리고 술잔이 비면 검무를 출 것을 청하게. 기회를 봐서 패공을 베어버리도록."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항장은 곧장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유방에게 술을 올리고 "이런 술자리에 따로 즐길 만한 것이 없으니 제가 검무를 춰서 흥을 돋궈볼까 합니다"라며 항우에게 청하자 항우는 이를 받아들였다. 항장의 칼춤이 시작되고 그는 칼춤을 추면서 유방을 노리기 시작했다. 낌새를 눈치챈 항백이 직접 나서서 "검무에 상대가 없어서는 안 되지!"라며 자신도 직접 칼을 들고 항장 앞에서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항장이 유방을 노리려 하면 항백이 이를 몸으로 막았기 때문에 항장은 유방을 칠 수 없었다.
장량 역시 낌새를 눈치채고 급히 군문으로 나가서 번쾌를 불러 "사정이 급하니 당장 들어가서 패공을 구하시오!"라고 말하자 번쾌는 "내가 안에 들어가서 패공과 생사를 같이 하겠소!"라 하고 결연히 칼과 방패를 들고 군문 안으로 들어섰다. 초병들이 막았으나 번쾌는 방패로 이들을 밀어붙힌 후 연회장 안까지 들어와 항우를 쏘아보았다. 사기의 항우본기에 의하면 이 때 번쾌의 형상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눈초리는 찢어져 있었다'고 적혀 있으며 천하의 항우도 번쾌의 형상에 '놀라서 검에 기대어 몸을 일으켰다'고 적혀 있다.
항우가 "넌 뭐야?"라고 묻자 장량이 번쾌를 소개했다. 항우는 그의 용맹스러운 형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보자마자 "참으로 장사로구나! 술을 저 자에게 내 주어라"라고 명했다. 큰 잔에 술이 내려지자 번쾌는 큰 잔을 그대로 원샷. 이 모습을 본 항우는 어지간히 번쾌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한 번 "그대는 참으로 장사로다! 더 마실 수 있겠는가?"라고 물어보았고, 번쾌는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을텐데, 술을 마다할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호쾌하게 대답했다.
항우가 기꺼이 술을 내주고, 이때 번쾌는 술잔을 비우며 항우에게 의(義)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항우에게 번쾌는 대답한다. "우리 패공께서는 장졸들과 수고로움을 같이 하며 관중까지 왔습니다. 운 좋게도 관중을 먼저 점령하는 공을 세웠으나, 패공께서는 장군만을 기다리며 어떠한 재물도 탐내지 않고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포상을 내려주시지는 못할 망정 비겁한 멍청이들 말에 넘어가 지금 패공을 해치려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항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뜨끔 그저 번쾌에게 석상에 앉아 진정하라고 달래는 것이 전부였다. 번쾌는 장량 옆자리에 앉았다. 얼마 후 유방은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면서 번쾌를 밖으로 불러내서 "지금 나와서 하직 인사도 안했는데 어쩌지?"라고 묻자 번쾌는 "지금 저들이 칼과 도마이고 우리는 그 위의 물고기인데 이 상황에서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라며 바로 도망칠 것을 청했다.
유방과 번쾌는 먼저 떠나면서 장량에게 사과를 표하도록 했다. 이 때 항우에게 바칠 백벽 한 쌍과 범증에게 바칠 옥두 한 쌍을 선물로 가져왔는데 이를 전하면서 하직인사를 하도록 했다. 장량은 "패공께서 취하시는 바람에 직접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선물과 함께 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항우는 주량이 약한 유방을 생각하며 더욱 방심하게 되었고 이를 지켜보는 범증은 받은 옥두를 칼로 깨뜨리며 분노에 떨며 이렇게 내뱉었다. "아! 어린아이(=항우)와는 대사를 도모할 수 없구나! 항장군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바로 패공이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포로로 잡히게 될 것이다!" 이렇듯 홍문연은 위기에 빠진 유방이 간신히 살아나온 사건이었다.
홍문연의 해석
유방의 목에 칼끝까지 다 겨눈 상태에서 죽이지 않고 보내준 항우의 변덕과 어리석음이 부각되는 일화이긴 하지만, 단순히 라이벌 제거에 실패했다는 것 외에도 문제되는 구석은 또 있다. 사실 홍문연 자체가 항우의 터무니없는 횡포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때 항우는 제후왕조차 아니었으므로 독단적으로 다른 제후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짓 자체가 큰 문제다. 초 회왕에게 보고도 올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유방에게 자기를 거역한 책임을 묻겠다며 관중을 기습한 행동에는 아무런 명분을 찾을 수 없다. 그냥 자기 기분나쁘다고 저질러놓고 본 것이다.
반면 유방에게는 점령한 땅을 다스리기 위해 주둔했다는 명분이 있었다. 당시 항우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최강의 군웅이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온 제후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광무산에서도 유방이 홍문연의 일을 지적하며 항우를 욕했다. 이런 일을 기분따라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항우의 정치적 감각이 재앙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대 진나라 전쟁에서 제 2 공로자인 유방을 박대함으로써 이후의 분봉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그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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